요즘들어 부쩍 비가 온다. 어젯밤에도 비가 왔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추워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근 열흘 만에 처음으로 식욕이 생겼었고, 정말 오랜만에 매운 떡볶이를 먹었다. 어쩐지 스스로 몸을 망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이것도 어쩌면 자해의 일종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상처내는 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거니까. 덕분에 저녁 내내 속이 뜨거웠다. 분명 속이 따갑고 뜨겁고 화끈화끈한데, 계속해서 어딘가 시리고 추운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몸 어딘가에 차고 냉한 것이 콱 들어와 박힌 기분이 든다.

추운 것을 생각하면, 날선 얼굴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표정들은 차갑다 못해 겨울처럼 추웠다. 그런 얼굴을 볼 때면, 나는 옷을 여러겹 겹쳐 입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위험한 순간마다 몸을 크게 부풀려서 위협하는 새처럼, 나는 하나도 겁먹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가을이 오는건 역시 반칙이지.라고 할머니처럼 꿍얼대면서 집에 돌아왔다. 갑자기 변한 계절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사실 원래 모든 게 이렇게 다 계절처럼 갑작스럽다. 모든 것은 언제나 갑자기 온다.

분리수거를 하겠다고 정리해둔게 벌써 열흘은 된 것 같은데, 아직 집 밖에 그대로 있다. 집안에도 더 이상 쓸모치 않은 것, 빈 껍데기 같은 것들이 잔뜩 남았다. 마음이 황폐할 때면, 집안을 돌보지 않는 일, 이것도 습관이라면 습관일까. 분리수거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씻고 방에 들어와서 가지런하게 누웠다. 텅 빈 방의 정 가운데를 가르듯 가만히 누워있었다. 어쩐지 방 한 가운데에 있으니까 방이 부쩍 큰 느낌이 들었다. 어디 구석에라도, 모서리에라도 닿아있으면 마음이 좀 편했을까. 어디에도 닿지 않은 상태가 지금 인 것 같다.

오늘의 분리수거는 또 모레의 일이 되겠지. 마음에도 버릴 것들이 가득인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 엄마처럼 마음속의 닫혀있는 서랍을 전부 꺼내서 한군데에 몽땅 다 쏟아버리고 간 기분이 든다. 나는 정리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분리배출되어야 할 감정과, 버려져야 할 감정이 다 어느 것인지 잘 모르겠다. 쏟아진 마음과 시간에서, 어떤 것들이 쓸만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못쓰는 사람인데, 쓸만한 것들이 내 안에 남아있을까. 어쩌면 내가 스스로 몹쓸 사람인 것을 확인하는 것이 무서워 가만히 두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피할 수 있으면 즐기라는 말은 누가 만들어낸거야. 개뿔. 나는 그냥 피하고만 싶다.

며칠 전에 먼 거리에 있는 너와 통화하다가, 장례식 같은거지. 라는 말이 위로가 됐다. 이상하게 그 말이 내 안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금 이건, 장례식 같은거라고. 다른건 몰라도 사람만큼은 돌아오지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