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마음의 많은 것들을 새로이 쓰고 싶은데, 요즈음 나는, 마음이 새것 같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묶음에서 새로 꺼낸 종잇장 같은 기분이다. 마음의 그 어디가 구겨지지도, 그 어느 귀퉁이 하나도 접히지 않았다. 정말로, 마음이 백지처럼 하얗다.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사실 이것이 진짜 새것인지, 내안의 모든 것이 버려져 아무것도 채워져 있지 않은 텅빈 상태인지, 마음을 온통 화이트로 덧칠해서, 그것으로 가득 채워져있는 종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하얗게 보이니, 새것 같다 느낄 뿐이다.

어찌되었던 간에, 지금 이 백지장 같은 마음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새것 같은 마음이란, 그게 무엇이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분이라거나 다시 새로운 것들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기분이 드는거니까. 전영록은 사랑은 연필로 쓰라며 그렇게 몇 번이나 노래했는데, 나는 언제나 사람을 볼펜으로 썼다. 허나 나는, 사람을 연필로 썼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설령 내가 사람을 지우개로 빡빡 문질러 지웠다 한들, 그래서 이 자리에 연필심의 흑연가루조차 남지 않았다 한들, 누군가를 마음에 눌러 쓴 흔적이란 언제나 거기 남아있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