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나는, 내가 여기서 너무 겉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내가 이 속에서 가라앉은 앙금 같다거나, 혼자 떠다니는 부유물 같은 느낌이다. 사실 그게 어느쪽이든 상관없지만, 그래도 단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내가, 이 무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이 자꾸 층층히 분리된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모두 미션 스쿨의 여중여고를 나왔다. 친구들이 아주 많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은 편도 아니었던 것 같다. 중학생일때나 고등학생일때도, 언제나 나는 대여섯명의 어떤 무리 속에서 나름대로의 도톰한 우정을 쌓으며 살았다.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1학기 임시 반장의 늪에 빠져 3년 내리 반장을 했었는데, 덕분에 나는 반 애들과도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언제나 나쁘지 않은 인간관계를 이루며 사는 줄만 알았다. 이만하면 괜찮아 보였다. 그래. 그 모든 것은 착각이었다. 모든 것이 변한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한 반에 서른 몇명이던 친구들은, 삼백여명의 학과사람들로 변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 강의에도 예닐곱개의 분반이 있었다. 때문에 시간표를 오티조 친구들과 억지로 맞추지 않는 이상, 우리과 사람들은 쉽게 혼자가 되었다. 오티에 가지 못한 사람들도, 쉽게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티에 다녀왔지만, 아주 쉽게, 신입생 첫학기부터 혼자가 되었다.

처음 몇주는 그런대로 연락하며 지냈지만, 금새 오티조였던 여자친구들과는 멀어졌다. 우리는 수업이 달랐고, 소속된 소모임이 달랐고, 게다가 나는, 정말로 그 애들과는 어딘가 달라도 달랐던 것 같다. 먼저 학교까지의 왕복 통학시간은 최소 다섯시간에서 여섯시간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언제나 일찌감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집에서는 할머니가 나를 기다렸다. 아주 가끔 엄마가 집에 올때마다 주던 비정기적인 용돈은 늘 부족했지만, 나는 차비가 없어서 집에 가지 못할때까지,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종종 수업을 핑계로 굶었고, 받은 돈의 대부분은 차비로 빠져나갔다.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니 그런걸 다 생각치 않아도, 걔네들과 나는 너무 달랐다. 스무살에 내 관심사는, 남자도, 화장도, 옷도, 가방도, 미팅이나 소개팅 따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좀 이상하며, 또 재미도 없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내가 거기서, 블럭처럼 떨어져 나오는데에는, 불과 한달이 채 걸리지도 않았다.

차라리 완전히 혼자가 되었으면 편했을테지만, 나는 또 어쩌다보니 남자 친구들이 무척이나 많아졌다. 내 대학생활의 인간관계를 세글자로 정리하자면, 내가 속했던 소모임 이름을 댈 수 있을 정도인데, 이 소모임은 매년 남자가 월등히 많이 들어왔다. 그 안에서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친하게 지내는 남자인 친구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여자애들과 더 멀어져 갔다. 나는 단지 선배나, 남자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는 곳에서 도마 위에 생선이 되었다. 내 곁에 모두가 군입대를 했을 때, 동기였던 여자애가 나를 유령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했을 때, 나는 결국 한 학기, 학교를 쉬게 되었다.

내가 3학년이 되어 학교로 들어왔을 땐, 그래도 대여섯명씩은 여자애가 들어오던 소모임엔 일년에 한명, 두명이 들어올까 말까였다. 그래서 나는 또 다시 남자 후배들과 쉽게 친해졌다. 또 일년이 지나 4학년 졸업반이 되었을 때, 나는 내 곁에 대학교 여자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 소모임 내에서 조차 여자 선배나 후배는 있었지만,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여자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우습게도 학업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미술사학과는 극심한 여초현상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면접장에서 본 남자들이 우리과에 전부 합격한다고 해도 채 다섯명이 안되었다. 고작 대학 4년을 거쳤을 뿐인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자인 사람들이 너무 어려워지고 말았다. 들어가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을까봐 무서웠다. 사실 그건 심각한 내 문제였다. 여자애들에게 있어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내가 그 나이때 여자들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조금 많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대학원 동기들은, 정말로 너무 좋은 사람들 뿐이라서, 나는 처음으로 여자친구들을, 선배가 아니라 언니들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발표 때마다 서로에게 비타오백이나 초코렛 같은 것들을 손에 쥐어주었고, 교수님께 혼날때면 함께 엉엉 울었다. 발표 준비로 누구도 만날 수 없는 기분일 때, 그나마 만날 수 있는것은 대학원 친구들뿐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정말로 내가 침전물이나 부유물 같은 기분이 든다. 또다시 스무살로 돌아온 기분이다. 그리고 그건, 아주 무서운 기분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좀처럼 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출근해서 하루일과를 소셜커머스에 어떤 쿠폰이 떴는지를 살펴보며 시작하지도 않고, 백과 구두는 거의 한두개로 돌려쓰며, 또 그것들을 크게 갖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종종 어제처럼 뭔가를 사고 싶다는 물욕이, 쇼핑욕구가 넘쳐서 종종 충동구매를 저지른다. 헌데 이를 두고 나는, 서로가 갖고 싶은게 다를 뿐이라며 이를 은연중에 합리화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나는, 백화점이나 브랜드의 세일기간이 언제인지, 세일중인 브랜드를 사는 것이, 얼마나 합리적인 소비인지를 알지 못한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브랜드가 너무 많아서, 나는 종종 다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나는 소개팅 같은 것에도 별 관심이 없고, 결혼조차 지금의 내게는 아주 먼 일일 뿐이다. 어딘가에서 여자는 인형놀이를 할 때부터 결혼을 꿈꾼다고도 말한 것 같은데, 정말로 그말이 맞다면, 내가 어렸을 적에 인형놀이를 하고 자라지 못했던 것이, 이렇게 내 안의 어떤 벽이 될 줄은 몰랐다. 그걸 진작에 알았다면 나도 역시 인형놀이를 하며 결혼을, 그 어떤 결혼의 조건들을 따졌을까. 엄마가 왜 내게 인형을 사주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 처음 받은 인형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어머니가 어린이날 선물로 사주신 노란 공룡인형이니까. 나는 한번도 바비인형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배고프지 않을 때면 사무실에 혼자 남아 점심을 종종 거르거나 또는 간단한 것으로 때우는데, 헌데, 내가 이렇게 슬그머니 혼자가 되어가는 것, 또 내가 어디에도 섞일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서 또다시 무서워진다. 정말로 내가 그렇게 별난 사람일까. 내가 일반적인 여자가 아니거나, 혹시라도 내가 외골수일까봐 무섭다. 마음이 나날이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