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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비가 많이 온 줄은 알았지만,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거의 실내에서만 보냈기 때문에, 막상 내린 비의 양을 가늠할 수는 없는게 당연했다. 며칠 전에는 캐스터가 최고 200mm에서 300mm의 비가 더 온다고 했었지만, 사실 나는 언제나 일기예보를 들을 때마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밀리미터의 비가, 도무지 어느정도인지 잘 가늠이 안되는 사람이었다. 단위를 좀더 눈에 익숙한 걸로 바꾸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20 - 30cm의 비는 도대체 얼마큼일까.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길다란 30cm 자를 떠올리면 내린 비의 양은 더욱 막연해져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간밤에, 어쩌다 잠깐, 한강에 다녀왔다. 예전에 앉았던 한강둔치로 가려는데 왜인지 모르게 출입금지 띠가 둘러져 있었다. 어쩐지 사고 현장이라도 본 기분이 들어서, 더 가까이 가지 못했다. 뒤돌아 나와서 강이 멀찍하게 보이는 벤치에 앉아, 달고 매운 떡볶이를 먹었다. 그러다 아주 잠깐 비가 내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목이 말라 편의점에 음료수를 사러갔다가, 내가 그만 포도맛 폴라포를 사는 바람에, 바로 차에 탈 수가 없었다. 그 덕분에 다시 조금 걸었다. 비온 후의 한강은, 언제나 옳다.
한강변을 걷다가, 띠를 두르지 않은 둔치가 보여 가까이 갔더니, 한강 물이 그렇게까지 어마어마하게 불어나 있을 줄은 몰랐다. 우리가 서 있는 둔치가, 언젠가 앉아있던 둔치의 계단이란걸 알아차리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단은 위의 몇 개를 남겨놓고, 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앉아있었던 우리가, 물속에 잠겨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간 내렸던 비로 잠수교는 잠겨서 엊그제 숭어가 그 위로 올라와 뛰놀았다지만, 잠수교를 지나본 적이 없는 나는 그게 얼마큼인지 또 가늠이 안됐다. 아니. 나는 언제나 모든 것을 잘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린 비의 양도, 이 마음의 부피도, 네 마음의 크기도, 나는 언제나 가늠할 수가 없었다.
물에 비친 다리 조명의 빛 그림자가, 오늘따라 너무 길어 예쁘다는 말을 연발했더니, 한강 물이 잔뜩 불어나 다리의 다리들이 깊게 잠겨서 그렇게 보이는거였다. 다리의 조명들과 한강물이 거의 맞닿아 긴 꼬리처럼 길게 늘어졌다. 어쩌면 일년에 며칠 없는 풍경인 것이다. 나는 유월의 마지막 날, 그 며칠 없는 풍경속에 서 있었다.
비 온 뒤의 한강변의 날씨도, 바람도, 야경도, 불어난 물도,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예쁜 밤. 그러나 잊지 못할 일들이, 잊지 못할 밤들이, 그리고 이제 두번 다시 오지 못할 장소가, 여기서 더는 늘어나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벌써 몇년 째, 내게 너무 힘들었던 유월이, 유약했던 유월이 또다시 어떤 풍경 속에 나를 남기고 이렇게 끝났다. 그리고 밤 사이에, 칠월이 되었다. 이제 정말, 한달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