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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이라고 생각했던 장마가 시작했다. 유월말이면 장마는 아직 좀 이르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몇 년동안 적었던 일기를 보면, 실제로 장마는 언제나 이즈음에, 이토록 섣부른 느낌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 재작년에도 그랬다. 매년 여름이면 찾아오는 장마더러 너는 아직 섣부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장마에게 제때라는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데다가, 설령 장마가 때앞서 나타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딱히 내 스스로 장마에 대한 준비나 대비랄 것 없이 사는데도 언제나 이렇게 성급하단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어쩌면 내게는 점점 더 미루고 싶은 시간이 많아지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정말로 시간을 뒤로 미룰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게 장마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출근하던 아침에는 가랑비가 내리는둥 마는둥 하더니, 퇴근을 앞둔 오후에는, 앞이 부옇게 보일 정도의 작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집을 나서던 그 순간에, 오늘부터 장마란 소식을 듣고도 커다란 장대 우산을 집어들지 못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작은 우산을 꺼내들었다. 오늘은,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침에는 가늘게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우산을 펼치지 않아도 되서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사의 검처럼 용기있게 빼들었지만, 사실 나는, 이 작은 우산을 펼치는게 너무나도 무서웠었다. 내가 이 우산을 펼치는 순간, 내가 한바퀴 돌려 묶어두었던 기억이 너무도 손쉽게 풀려 내 손에서 펼쳐질거라는건, 우리에게 이미 예정된 운명같은거였다. 그래.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 다만, 너와 나를 뺀 모든 것이.
퇴근길에는, 비가 아주 많이 내렸다. 결국 우산은 가방 밖으로 걸어나왔다. 두 손으로 버튼을 힘주어 꾹 누르자 우산이 자동으로 펼쳐졌다. 잇따라 기억도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 또한 우연인지 운명인지, 하필이면 나는 몇 년만에 그 동네로 향해가는 길이었다. 그냥 수동으로 사자는 내 말에도, 아득바득 자동 우산을 내 손에 안겨주었던 너를 처음으로, 억눌린 기억들이 제멋대로 밖으로 쏟아져 나와 또 다시 내 안에서 네가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그 동네 어귀에 접어들었을 땐, 하필이면 그 길에서, 기억나는 것들이 온통 네가 울던 기억이었다. 나는 망아지같은 기억들을, 울던 너를 달래고 달랬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많이 오는데도 우산을 펼 수가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고스란히 내리는 비를 맞았다. 비에 씻겨 떠내려갈 줄 알았던 기억들은, 비에 젖은 머리카락처럼 내 얼굴에 온통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