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봄이다. 태어나 살며 내가 기억하는 봄만 해도 족히 스무번은 넘었을 것이다. 나는 벌써 스물아홉번째의 봄을 맞이했고, 그래서 어느새 스물아홉이다. 어른들이 지긋지긋하게 말하는 여자 아홉수이고, 그래도 주변에서는 잘도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 언젠가부터 뜸-해진 사이에서, 오는 연락이 결혼을 알리는 일이거나 아이의 생일인 것, 그게 아주 당연한 나이가 되었다. 나도, 너도 모두가 그게 당연하다. 우리는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나이를 먹었다.

나는 언제나 해가 바뀔 때면, 내 삶의 한가운데가 크게 변하기를 꿈꿨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나를 가볍게 배반했다. 내 삶의 모서리가 쉽게 닳고 해지는 동안, 나 역시도 서른 언저리가 되었다. 서른, 곧, 서른이다.

헌데, 나는 내가 거진 서른이 다 되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 꿈꾸던 내 나이 서른즈음에는 내가 차갑지는 못해도 도시 여자는 될 줄 알았지. 그런데 이게 뭐야. 다 망했어. 나는 여전히 그럴듯한 정장이 한벌도 없고, 야구잠바와 후드티를 교복 수준으로 입고 다닌다. 백을 보며 눈을 번뜩하는 것이 아니라, 백팩을 보고 눈이 뒤집힌다. 요새 위시리스트가 올블랙 야구잠바와 바람막이, 예쁜 색의 백팩인걸 보면 말 다했지. 또 여전히 나는 밥보다 더 과자를 좋아하고, 사탕을, 초코렛을, 단내를 풍기는 것을 좋아한다. 여전히 귀여운 것에 열광하고, 그런 것들을 사모으는 것에도 열중한다. 귀여운 건 정말 참을 수 없어. 누구든 이걸 보면 이-렇-게.

때문에 나는, 내가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은지도 모르고 살았다. 단지 스물아홉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치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보다 더 공들여 나를 걱정해주는 타인의 말을 고스란히 듣고 있지만, 나는 이것을 고마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세상에는 진짜 별게 다 고마운게 있다.

어쨌거나, 바야흐로 봄이다. 작년에 왔던 봄이, 잊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또 왔다. 버적 마른 나뭇가지에 새순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또 성급한 나무는 잎사귀가 달리기도 전에 꽃을 터뜨렸다. 살랑바람이 불었다. 진짜 봄이다. 봄날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