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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다시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글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한 줄이든 두 줄이든 되는대로 다시 써보려고 한다. 하루에 쓸 만한 문장이 단 한 문장도 없을지라도, 서른여섯의 나를 기억하게 되거나 기록하게 되길 바란다. 나이가 들고, 또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례로, 잊어버리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휘발되는 감정들이 많아진 게 다행일까. 감정의 변화가 무뎌졌다. 나라는 사람이 예전과는 달리 조금은 뭉툭해진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일기를 잘 쓸 수는 없겠지만, 뭔가를 잘 써보려는 마음은 버리기로 했다. 그냥 나는 내가 되고 싶다. 나는 정말 내가 되고 싶다.
지난번 회식 때 있었던 일, 사실 정말 오래전부터 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분 탓이라 여기며 내게 따라붙는 시선을 오래도록 견뎠다. 무려 오 년이나 견뎠다. 그 오래된 시선이 진짜로 내 몸에 닿는 순간, 기어이 터지고 말았다. 씨발. 진짜 내 몸에 손대지 마.
앞서 내가 뭉툭해졌다고 말해놓고, 다음 문단에 바로 욕이 섞인 것은 이건 도무지 뭉툭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추행에 뭉툭해질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덕분에 요즈음 나는 거의 분노조절 장애를 겪는 기분이다. 괜찮았다가 너무 화가 났다가, 울었다 포기했다가 한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은 정말 쉽다. 너를 응원한다는 말도 정말 쉽다. 피하지 그랬냐는 말은 당해본 사람에게 무력감을 준다. 나는 때때로 권력형 성추행의 결말에 대해 찾아보기도 하고, 민사에 대해 검색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결과들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상하관계, 위계, 그런 말들이 다 소름 끼치게 역겹다.
마음 건강이 너무 나빠졌다. 매주 얼굴을 보면 화가 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납작 엎드려야 한다는 사실엔 더 화가 나고, 내 속에 주먹만 한 돌덩이를 내가 던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내가 파괴되고 있는 것 같다. 나를 파괴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데, 왜 나는 지금, 애꿎은 나를 파괴하는지 모르겠다. 돌덩이를 당신에게 던지고 싶다. 나는 망가지고 싶지 않다. 않은데 않은데, 하루가 갈수록 나도, 내 하루도, 마음도, 손을 대면 댈수록, 손 쓸수 없이, 점점 더 망가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