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나는 스물일곱이 되었다. 때가 되면 바뀌는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순리처럼 그렇게 스물일곱살도 역시, 이렇게 때가 되어 시작한 것 뿐이다. 고향이 울산인 내 3호 아가는, "누나, 우리 엄마가 나이 많은 서울 여자 조심하랬어."라며 전부터 나를 놀려왔는데, 이제는 정말 '나이 많은 서울여자'라는 말에, 부인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꼼짝없이 이십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따금씩, 우리는 요절하기에도 이미 늦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세밑 역시 크리스마스에 이어 주말이었다. 때문에 나는 또다시 아르바이트에 출근했다. 출근길에는 이상하게도 거리거리마다 붙잡고 안아달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리 허그라고 적혀진 피켓을 들고서 안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들, '다들 애정결핍인가봐' 내가 괜히 부연 입김과 함께 볼멘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안아달라고 말할 수 조차 없는 나는, 그저 조금 모자란 결핍이 아니라, 아예 다 써 없어져 버린 결핍일지도 모른다.

어째서인지 길가에도, 지나가는 가게들마다 사람이 들어차 있었다. 크리스마스보다 몇 배로 더 많은 사람들 중에는 몇 시간만 지나면 찬란한 십대를 무심코 져버릴 앳된 얼굴의 아이들이 숱하게 길을 헤메고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원치 않게 어깨를 부딪칠 때마다, 마음에 금이 가고, 어딘가 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알바에 출근해서는 새해맞이 청소 욕심을 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한 해를 돌아볼 감상에 빠질 시간도 없이 바빠졌다. 홍대의 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7층 위에서, 마치 과자 부스러기 떨어진 곳에 개미처럼 잔뜩 몰린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내가 모르는 홍대 어디 구석에 제야의 종이라도 달려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왜 여기에 이토록 사람이 몰려들었을까.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도, 해돋이도 없이, 연말이 토해낸 쓰레기들로 가득한 이 곳에. 굽어진 골목마다, 인파가 굽이쳤다.

그러다 결국엔 덜컥 새해를 맞이했다. 사방이 유리로 막혀진 이곳에도, 그 어떤 사람들의 환호성이 바르르 전해져와 마음이 파르르 떨렸다. 이렇게 덜컥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하니, 덜컥, 문고리를 거는 듯 마음이 잠겼다. 가만히 내가 잠겼다. 그때부터 나는 잠긴 마음에 갇혀서,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을 2011년 그 열두달을 가만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스물여섯 번째 생 역시도 고집스레 미련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너무 자주 내 속을 뒤집었다. 기억을 내안에서 꺼내어 얼마나 잘근잘근 씹었던건지 어떤 기억은 내가 물어뜯은 잇자국이 가득했고,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다 망가진 날들도 있었다. 어떤 기억은 이미 지나치게 손때 묻었다. 스물여섯번째 생에서 나는, 이룬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도, 스물여섯번 째의 생은 결국 이루어지고 말았다.

호호부는 입김에도 엄청나게 덜컹이는 나를 옆에서 금새 알아차리고는, 가까이와서 나를 자꾸 어르고 달래었다. 그러나 아이야, 아이는 달래는게 아니는게 아니야. 결국엔 같이 알바하는 동생을 앞에 두고 그 어디에도 쓸데없을 눈물을 보였다. 세초부터 내가 참 몹쓸짓이다. 알바를 함께하는 너는 무슨 죄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순간 내보낸 눈물이, 지난 세밑의 찌꺼기들이라 믿는다. 나는 깨끗하게 비워졌다.

최근 나의 일상은 대충 이렇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교로 출근하여 오전 9시에 시작하여 오후 5시에 끝나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다.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십분 일찍 퇴근하여, 8시까지 대학원 외국어 수업을 듣는다. 목요일 밤에는 아쇼이와의 스터디가, 그 외에도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비정기적인 스터디가 있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는 아르바이트에 출근하며,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온다. 문득, 네가 떠났기 때문에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를 한지도 벌써 5개월 째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본디 나는 새해맞이 계획이나 다짐을 세우는 것에 소질이 없는 사람인데, 왜 갑자기 하고 싶은 것들이 이렇게나 많아졌는지 잘 모르겠다. 지난 달부터 엄마의 동네 사람들과 천만원짜리 계를 시작했다. 말일마다 50만원이 통장에서 단 한 줄로 사라진다. 사라진 돈은 여기서 일년 반은 더 지나야 나타나게 될 것이다. 1월 1일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일렉 기타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치는 것도 아주 많이 헤멘다. 지난 해 가을부터 자라나던 새 언어에 대한 욕심이 깊이 뿌리를 내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돌아오는 주말인 7일에 회화 수업에 등록하려 했었지만, 그럼 지금 당장의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기에, 대학원 수업이 끝나는 다음달로 미루기로 했다. 또 다음주인 10일부터는 매주 화요일마다 성당으로 예비 신자 교리를 받으러 간다. 올해에 세례를 받고 싶다. 거기에 대학원 친구와 말로만 구상했었던 아마도 프로젝트가 진짜로 결성되었다. 구정이 오기 전까지 홈페이지를 만들기로 결심했었는데 능력자 후배의 도움으로 진행이 빠르게 되어가고 있다. 또 오늘은 은행 홈페이지들을 들여다 보면서, 여기저기 흩어진 예금들을 모아서 자유 적금을 두개 정도 더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렇게 뭔가를 문어발식으로 하려고 하는 내가, 내 삶의 빈틈을 손과 발에 달린 빨판 따위로 죄다 메우려 하는 이 마음이, 사실은 너무도 계획적인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조금 무섭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지금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귀결되어 가고 있음을 나만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 속의 가장 밑바닥에서 숨어져 있었던 마음이, 결국에는 스물여섯 번째의 생에서 온 힘을 다해 정상에 오르고야 말았다. 그때 내가 정상에서 외쳤던 말들은 아직 아무도 듣지 못했다. 모두 내안의 메아리가 되었을 뿐이다. 이 메아리들은 앞으로 나를 몇번 더 울게하고 나면, 내 밖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새해가 시작한지도 닷새가 지났다. 늦었지만 나도 새해 복은 많이 받고 싶다. 그러니 지금 이 문단을 보시는 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혹시 계실지 모르겠지만, 지난 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로 제가 만나 부탁할 건 딱히 없겠지만, 그저 올해도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