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순간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목 바로 아래까지 차오르는 것만 같아, 재빨리 내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늦은밤, 집안의 공기는 진작에 슬퍼졌다. 여럿이 함께 맥주를 들이키다가, 홀로 불이 다 꺼진 방에 가만히 누웠더니, 금새 체한 것처럼 내 속이 꽉 틀어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새까만 고무 마개로 아주 꽉 틀어막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내 수도꼭지는 이미 틀어져, 물을 아주 콸콸콸 잘도 쏟아냈다. 그러나 내 배수관은 진작에 막힌 것이 틀림없었다. 겉도, 그 속도 아주 꽉 막혔다. 이미 바늘구멍 같아진 내 속은, 낙타도, 그 아무도, 절대로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하얀 곰인형 옆에 가지런히 누워서, 내 속의 슬픔들을 토하고, 토해냈다. 그러자, 내 속에 꽉 얹혀있던 사람들이, 다 토해져 검은방 안에 쏟아졌다. 쏟아진 사람들을 대충 헤집어 봐도, 내가 또다시, 사람을 함부로 집어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람을 내안에 두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내가 삼킨 사람들이, 이렇게 내안에 꽉 얹혀, 나의 마음을 뻐근하게 하는데도, 나는 매번 사람을, 주섬주섬 다시 내안에 주워담느냐 바빴다. 아니. 나는 그저, 내 사람이 갖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내 사람이 될 수 없는 네가 있다.

그날 밤에는, 잘 모르겠다 생각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리운건지, 내 가벼운 말에도 대꾸해 주는 사람이 그리운건지, 문득 나는 아무번호나 꾹꾹 눌러서라도,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통화버튼을 누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우리의 사이는 진작에 어려워졌다. 때문에 엄지손가락에 맞닿아있던 통화버튼은 점점 멀어지고 멀어졌다. 나는 애써 전화하고 싶은 마음을, 몇번이고 눌렀다. 그러나, 열몇자리의 숫자는 결국 눌러지지 못했다.

결국에는 녹음된 목소리를 꺼냈다. 벌써 몇달이나 지나버렸지만, 네 목소리에는, 네 습관같은 말투도, 익숙한 말버릇도 남아있어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 목소리가 너무도 낯설었다. 나는 듣고 있는 내가 간지러울 만큼 살랑거리고 있었다. 나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사방팔방으로 흔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살랑거릴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낯설다. 하지만 나는 그 때문에, 그래도 내가 마지막까지, 행복했다 믿어졌다.

애써 말하는 내 목소리에는, 대체 얼마만큼의 마음이 농축되어있는것인지, 나는 거기에 담긴 내 목소리의 농도를 좀처럼 짐작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 살랑거리는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너는 알았을까. 그 날 그 때, 거기 담았던 내 목소리의 농도를.

목소리를 가만히 들으면 들을 수록, 벌어진 생살에 굵은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욱신욱신 마음이 아팠다. 크고 작은 소금같은 기억들이, 내 붉은 속살에 뿌려져 나를 몇번이고 절이고 절였다. 결국 나는 숨이 죽었다. 그래도 나는 목소리가 그립다. 아니 어쩌면 사람이 그리운건지도 모르겠다. 다시 전화를 걸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 전화를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아직은 밤마다, 너무 힘들다. 지금 이토록 짠 밤이, 스물여섯을 마지막으로 다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로 심심해지고 싶다. 정말로 싱거운 사람이 되어도 좋으니까, 차라리 맹탕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더, 울고 싶지가 않다. 허나 지금 나는 소금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