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태풍이 다녀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빛나는 햇빛과 새파란 하늘이다. 아침에 애써 신고나온 레인부츠와 커다란 우산이 애물단지로 전략했다. 엊저녁 열한시 반, 기절이라도 하는 것처럼 잠이 들고서, 내 작은방이 떠내려갈까 무섭던 빗소리에 기어코 또 새벽에 눈을 떴다. 몇 시인지 들여다 보려던 핸드폰 화면에 가득찬 메시지들, 서로가 서로 다른 말을 했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하고, 나 자꾸 일찍 자네, 비가 엄청 와.라는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포세이돈의 강림이라던데 라던 네 말은, 거기서 나를 바람소리 하나 더 듣지 못하고 잠들게 했다. 너는 여전히 나를 재우는 능력이 있다. 새까만 장우산을 쓰고, 또 새까만 레인부츠를 신고 전투에 나가는 뮬란처럼 출근 했지만, 위아래로 시꺼멓기만 한 나는 오늘, 파랗고 깨끗한 하늘아래 서 있기가 부끄럽다. 그렇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