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달, 부러 일기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한의사님이 왠만하면 일기를 쓰지 않을 것을 권유한 것도 있었고, 글자와 문장에 지나치게 예민해져 있는 까닭도 있었다. 내가 두드려 글자들을 새기면, 그 글자들은 모두 내게서 낙인이 되었다. 그러나 쓰지 않았으므로, 나는 잊을 수 있을까. 내가 또 누군가를 완전히 망가뜨렸단 사실을.

어젯밤 꿈에, 네가 나왔다. 가끔 너는 이렇게 불쑥 머리를 내민다. 그리고 우리가 연애할 때의 모습으로 나타나, 변함없는 사랑을 내게 주려고 노력한다. 네 마지막 소식이, 너 역시도 잘지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면, 나는 이런 죄책감들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너는 알고 있을까. 나 역시도 너 못지않게 망가졌음을.

누군가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동시에,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현재의 내가 그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어느 밤이면 끔찍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지난 밤이 그랬다. 나는 정말로 이상한 멀티플레이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