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되면서, 나는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에 성당에 다녔다. 그리고 또 내가 어렸을 때에, 집안에 서로 다른 두 종교가 있으면 자식에게 해가 간다는 말을 듣고서부터 찜찜해 하다가, 결국에는 성당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낮은 서랍장 위에 올려있던 마리아상과 벽에 걸려있던 십자가는 어느날부턴가 온데간데 없이 치워졌다. 그랬음에도 할머니의 손에 끼워져 있던 금색의 묵주반지는 팔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어서 오랜시간 그 손에 끼워져있었다. 나는 할머니 손에 딱 맞았던 묵주반지가, 내 기억의 마지막에는 아주 헐렁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마지막을 떠올려보면, 반지 아랫쪽에 마치 실패처럼 까만실이 칭칭 감겨진채로, 손가락에 고정된 채로 끼워져 있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에, 할머니를 따라 여러번 성당에 갔었는데, 내게 성당이란 할머니 옆에서 오늘의 성경말씀을 찾아주거나, 찬송가를 번호를 찾았던 기억만이 남아있었다. 할머니는 남들이 대여섯줄을 읽어나갈 때에, 겨우 서너글자를 간신히 읽었다.가끔 나는 할머니에게 오늘의 성경말씀 구절이 어딘지를 불러주며, 직접 글자를 찾게 한 적도 있었으나, 결국에는 그 더듬거림이 답답해서 빼앗아 성경을 펼쳤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어린 나는 얼마나 얌체같은가. 그럼에도 할머니는 그런 나를 그저 기특하게 여겼던 것 같다.

11월 말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천주교 신자인 새언니는 할머니의 장례미사를 드리고 싶어했지만, 가족중에서 그 아무도 할머니의 세례명을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이 어쩐지 무척 슬펐다. 성당을 다녀야겠다는 계기가 된 것에는, 사실 다른 이유들도 분명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랬다. 사실 그게 전부다.

아직까지도 나는, 핸드폰 첫화면에서 할머니 사진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이따금씩 주변사람들이 핸드폰 화면을 보고는, 계속 이렇게 할머니 사진을 가까이 두고 보면 안된다고, 산 사람은 이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무서운 것은, 내가 산사람임에도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살아서 할머니를 잊을까봐, 그게 너무 무서울 뿐이다. 나는 잊고싶지 않다. 나는 이따금씩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은데, 특히 오늘이 정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