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까지도 너를 믿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믿음에는 지나치게 맹목적인 구석이 있으며, 정말 지독할만큼 끈적끈적한 부분이 있다. 너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든 내 마음에 달라붙어서 남아있으려 한다. 어쩌면 네게는, 내게 보이지 않는 빨판 같은 것이라도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내 마음의 우묵한 부분을 찾아내 내게 흡착한채로 지금까지도 꼭 달라붙어 있는 걸 보면.

나는 누군가를 얼마든지 믿어줄 수 있지만, 누군가는 나를 얼마든지 믿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착한척을 일삼는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 나를 절대로 전부 다 믿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누군가 나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 무섭다. 나를 온전히 다 믿고, 내 생활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 나를 믿음으로 불안하지 않다고 말하는 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네 믿음에 절대로 부응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네가 없는 곳에서, 혹은 네가 알지 못하게 자주 나쁜짓을 일삼는다. 그걸 네가 모른다. 만약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도끼중에, 믿는 도끼와 믿지 않는 도끼가 있다면, 나는 절대로 믿지 말아야 할 도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