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 오늘도 나는 잠을 내일로 미루기라도 한 것만 같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더 미룰 것이 없는 나는, 오늘 자야할 잠을 내일로 미루는 것만 같다. 고질이 된 불면이 다시 시작된지도, 벌써 꽤 오래 되었다.

지난 금요일이 처서였다. 사계절이 지나치게 불균형해진 지금에도 이십사절기의 흐름은 그대로인건지, 처서에 접어들자마자 여름 내내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더위가 어쩐지 느슨해진 것 같다. 날이 풀린다. 여름 내내 끊임없이 움직여야만했던 내방 벽에 달린 선풍기의 날갯짓도 조금은 여려졌다. 때가 되었다. 어린 날개가 더위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처서에 가을이 오지 않아서 서글픈 선풍기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