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온다. 유월에 지지부진하게 미뤄진 장마가 이렇게 시작하려는지 무심코 열어본 주간 날씨 예보에는 우산들이 나란히 펼쳐져 있다. 나는 빗소리도 좋아하고, 비를 맞는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습도에는 몹시도 취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지금까지 충충한 창밖과 높은 습도는, 7월과 더불어 새로운 한주를 시작해야만 하는 월요일부터 견디기엔 조금 버거운 기분이 든다.

7월 1일 금요일, 퇴근길에 비가 아주 많이 오길래, 개굴개굴, 집이 떠내려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쩐지 집에 와보니 진짜로 물난리가 났다. 문을 여는 순간, 까만 어둠 속에 고인 빗물들. 푹 젖은 까만 구두와, 푹 젖은 까만 현관매트, 나는 눈앞이 새카매지는 기분이 들었다. 빗소리와 함께 불금을 보내고 싶었던 나는, 때 아닌 물금을 보냈다.

나는 새 달이 올때마다, 여전히 습관처럼 내 생을 뒤흔들만한 일이 벌어지길 바라고 있다. 물론 그런 일은 결코 없다는 걸 알면서도. 헌데, 수해라니 시작부터 한방, 물먹은 기분이다.

그간 착한 세입자 코스프레를 해왔기 때문인지, 다음날 아침부터 집주인이 달려왔다. 덕분에 젖은 집은 주말동안 다시 원상복구 되었건만, 수해를 입은 기분이란건 어쩐지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다. 무엇인가 스며든 기분, 그리고 자꾸만 나는 마른 책처럼 이제는 원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젖은건 집이고 장판인데, 왜 내가 우글쭈글한걸까. 마음이 우그러진다.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어떤 것일까. 요즈음 나는 자꾸만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기분이 든다. 우리의 이야기중에서 단 하루라도 마른 날들이 있었을까. 단 하루라도 원상태의 날이 있었을까.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는 애초부터 젖은책에 쓰여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변했고, 너도 변했다. 아니. 변하기 쉬운 계절이다. 여름이란건 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