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오락가락 하더니, 드디어 여름이 온 것 같다. 이번 봄이 끝나지 않는다며 며칠전에 우는 소리를 할 땐 언제고, 이렇게 막상 여름이라고 하니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다. 언제부터였지. 계절이 서서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갑자기 오는 것 같다. 오늘부터 우리나라는 여름이라고,이름을 지어주듯 딱- 하고 정해주는 기분. 내가 내 이름을 반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처럼.

계절이 오고 가는 것에도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 가령 옷들을 정리 한다거나, 마음을 정리 한다거나 그런 것들, 아직 우리집 옷 선반에는 겨울 니트가 잔뜩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정말 이대로 여름이 와도 되는 걸까.. 나는 선반위에 엉망으로 쌓여진 색색의 니트들처럼 마음 정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정리를 해야한다고 수없이 되뇌이면서도, 도무지 나는 내 마음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오늘, 한낮의 기온이 27도를 넘어섰다. 오후에 갑자기 외근을 나가느냐 버스를 탔더니, 버스 안에서 에어컨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람이 나오는 송풍구에 손을 갖다 대면서, 마음이 식기를 바라는 내가 조금은 우스웠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자꾸 치밀어 오르는 화가 식고, 뜨거워진 마음이 식을 수가 있다면 좋겠다. 나는 냉방병에 걸려도 좋으니, 너는 바람처럼 내게 불어오라.

아무튼 이렇게 여름이 되는걸까. 이번 역시도, 계절이 바뀜으로 인해 나는 괜찮아졌는지, 아니 괜찮아질지 궁금하다. 그래서 바라고 바라던 여름이 될지, 또 길고 긴 여름이 될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길었던 봄이 끝났다. 너무나도 지나친 계절이었다. 그래서 지나 오는것도 이렇게 힘이 들었지만, 또 이렇게 결국엔 지나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