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에 떠도는 소문에는 아이를 낳으면서 뇌도 낳는다고 했다.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땐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던 것 같은데, 요즘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옛 사람들 말이 틀린 게 없다. 하긴 생각해보면 옛 사람들 말이라는 건 거의 통계학에 가깝지 않나. 어쨌거나 요즘 들어 별 일도, 별 일 아닌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불혹의 나이가 되어버린 내게 시작된 노화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다가 적절한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아니 그걸 뭐라고 말하지..? 라고 입속에 말들이 멈춘다. 마음이 멈춘다. 모국어가 약해졌다. 내게 다른 언어는 없는데도. 나는 언어를, 표현을 잃는다. 말을 잃어간다. 이제 내게 언어조차 남아있지 않다면, 나는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살면서 책을 소리내어 읽은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중학교 때까진 수업 시간에 지문을 돌아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날의 나는 내성적이었다가 외향적이었다가를 수없이 반복했는데,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을 무서워 했을 때에도 소리내어 책을 읽는 그 순간이 좋았다. 입속에 문장들이 자라났다. 입안에 그럴듯한 말을 머금고 있으면, 나도 그럴듯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럴듯하게 살고 싶었다. 비문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소리내어 책을 많이 읽게 되는 순간은, 막연히 언어를 처음 배울 때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그게 아님을 알게 됐다.부모가 되면 내가 언어를 배우던 시점보다 훨씬 더 많이, 적게는 3-4년에서 많게는 6-7년을 소리내어 책을 읽어야 한다. 어쩌면 부모란 영원한 화자가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20년을 소리내지 않고 살았더니, 책을 똑바로 읽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분명 제대로 보고 읽고 있음에도 자주 문장의 순서를 바꾸고, 앞뒤 단어를 입에서 섞는다. 말을 배우는 네 앞에서, 말도 안되는 말들이 태어난다. 머리가 이상해졌나. 글을 제대로 읽지 못히는 것도 노화의 일종일까. 가끔 나는 내가 걱정스럽다.

아마도 나는 너에게, 지금처럼 조금 유난스러운 부모일 것이다. 너는 내 유난과 함께 오래도록 살아가겠지. 너는 내가 잃어버린 단어가 되고, 내가 바꿔버린 문장이 되고, 내가 하지 못한 말이 되고, 또 내가 잊어가는 많은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단지 너만은, 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