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모든 말들을,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하지만 살다 보면 결국 그런것은 다 잊혀지고 별 것 아닌 것들이 남는다. 4번 출구의 풍경이라던가, 네 손가락 사이의 생겼던 상처나, 우리가 시덥잖은 이야기를 할 때 잠깐 지었던 네 표정이나, 그 여름 밤의 공기 같은 것들.

요즘 들어 부쩍 지난 일들을 떠올릴 때가 많아졌다. 나는 과거를 얼마나 올바르게 기억하고 있는 지를 떠올려보면 사실 잘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건 저장되며 원래 조금씩 내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기 마련이니까. 문득 지난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기억을 얼만큼 믿을 수 있는 지에 대한 의문. 내가 믿고 떠든 기억들이 내가 좋은 쪽으로만, 내가 유리한 쪽으로만, 혹은 더 많이 상처 받거나 덜 상처 받기 위한 방법으로 기억했다면 이걸 정말 누군가와의 기억으로 말 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우리의 왜곡된 기억처럼 비틀어진 사람이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너는 그 말을 꼭 무기처럼 사용해. 그래서 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지나간 기억을, 내가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는 이유로 무기처럼 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네 말이 맞았다. 내가 잡은 기억의 권력은 언제나 비틀어진 방식으로만 쓰여진다.

사실 기억하지 못하는 건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흐려진 순간들은, 내가 책임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내 방어기제란 언제나 그런 식이다. 올바르지 않은 기억으로 남기거나, 잊음으로 그 무엇도 책임지지 않는 것. 나는 그리하여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인간인가.

상대보다 더 많이 기억하려고 하는 나는, 얼마나 많은 관계에서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일까. 그리하여 또 얼마나 보잘 것이 없는 인간일까. 그래서 나는, 그리고 나는, 그러니까 나는,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여전할 수 밖에 없는, 여전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