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장마가 너무 길다. 적림이다. 이 여름의 기억들을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전부 비에 적시기라도 할 참인지, 며느리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는 것마냥, 여기 이 마음에, 도무지 비가 마를 날이 없다. 내리는 비는 또 올곧게 내리지만은 않아서, 우산을 씌워도 기억의 어깨가 이따금씩 비를 맞는다. 비에 녹녹히 젖은 어깨와, 그 어깨너머의 기억들, 내게는 좀처럼 물 마를 날이 없다.

정말로 띄엄띄엄, 해가 난다. 장마를 견디는 나무는 나날이 그 색이 더욱 짙푸르게 변하는데도, 햇볕을 받지 못하는 마음일랑 그저 깊은 우물처럼 끝없이 짙어지는 것만 같다. 나는 정말로 그 속을 모르겠다. 그 속이 대체 언제부터 가물어 텅 비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맑은 물로 가득차 흐르는지, 혹시 어쩌면 진작에 이미 다 썩은 물이 거기에 고여있는지 조차도.

정말이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네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속이 공연히 우물처럼 깊어진다. 아무도 이렇게 속 깊은 나를, 들여다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 내 속은 너무 깊다. 그래. 나는 속이 깊은 사람이다. 그게 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