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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부터 나흘간 휴가를 받았다. 사실 말이 나흘이지, 돌아올 주말을 포함한다면 무려 엿새동안이나 쉬는 셈이다. 사실 우리같은 비정규직 조교들에게는 따로 여름 휴가가 없기 때문에, 굳이 휴가를 가고 싶거든 공식적인 연가를 몇일 붙여서 써야 했지만, 우리 학장님은 센스쟁이라서, 연가 차감없이 (학교에 보고없이 비밀리에) 8월 둘째주까지 3일씩 휴가를 두명이상 겹치지 않게 쓰라고 하셨다. 헌데 학장님이 8월 5일까지 미국에 가계신 덕분에, 우리는 거기서 또 몰래몰래(..) 일주일에 한번씩 차감없는 연가를 더 쓰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내 여름 휴가가 4일로 늘었다. 그치만 별로 할게 없다. 휴가가 사흘째에 접어들었지만, 별로 한게 없다.
휴가를 언제 갈건지 정하라는 말이야 이미 몇주전부터 들었지만, 사실 나는 언젠가 네가 했던 말 때문에, 그 혹시 모를 것을 기다리느냐고 휴가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갑작스럽게 정한 휴가 날짜, 그러나 사실 내게는, 네가 없는 어떤 휴가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여름휴가 대부분의 시간이 방안에서 지나간다. 주변사람들이 자꾸 혼자서라도 여행이라도 다녀오라 하지만, 사실 나는 갈 수가 없다.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라도 갈 수 있지만, 이번주는 그 혹시 모를 일들 때문에, 어디에도 갈 수가 없다. 그렇게 마음이 안먹어진다. 나는 마음이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이번 휴가가 끝나면, 아니 이번주가 결국 다 지나버리면은, 다음 주말에는 2박 3일동안 절에 다녀오게 될 것 같다. 당장 다음주가 되면 어디로든 홀로 훌쩍 떠나고 싶어질 것만 같지만, 또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자리잡고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불교미술을 한답시고 부처님과 보살의 불상들과 불화의 특징을 공부하면서도, 아직까지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예절이나 사찰의 하루가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낯선 도시로 떠나서 새것들을 눈에 담아내는 일보다, 어느 한군데 틀어 박혀서 헌것인 되어버린 나를 버릴 시간이 필요한 것만 같다. 나는 이미 헌것이다. 마음이 낡고 성하지 아니한.
매일매일 나뿐인 시간들이 많아지지만, 그래도 나는 좀처럼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다.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는 이미 작년부터, 아니 너를 처음만나던 순간부터 했던 것만 같은데, 이제와서 보니 사실 내 준비성이란것은, 이리도 치밀하지 못한 것이었다는 것이 훤하게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매일매일 네가 떠날 것을 실감하지만, 나는 또 매일매일 네가 떠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리고 또 나는 실감한다. 끝내 네가 사라져도, 끝끝내 내가 살아지리라는 것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