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도저히, 네 눈을 보고는 말할 수 없던 것들이 너무 많이 있었어.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네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편지를 쓰는 내내, 어느새 길어진 오른손의 새끼손톱이 내 손바닥을 자꾸만 찔러서 나는 너무나도 아팠어. 아니. 사실은 너를 향한 편지의 모든 문장들이, 온통 내 마음에 새겨지는 것만 같아서 그게 더 많이 아팠어. 한자한자 글씨를 눌러쓸수록, 그래서 한장한장 편지지의 장수가 늘어날수록, 편지속의 내 글씨는, 지금의 내 마음만큼 자꾸 비뚤어지고 제멋대로 헝클어져 버렸던 것만 같아. 글자들이 제멋대로 흩어져서, 그 편지에 누웠어. 내가 세상에 태어나 쓴 글씨들 중에 그 마지막 편지에 적힌 글씨들이 가장 못난 얼굴을 했을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정말로 손바닥에 자꾸만 손톱이 파고들어서 너무 아팠어. 마음이 파고들어서 아팠어. 그리고 꼭 이게 변명은 아니야. 왜냐면 사실 내가 눌러쓴 편지는 여섯장이었으니까. 네게 준 네장의 편지, 그리고 사실, 네게 주지 못한 편지 두장이 더 있어. 처음 썼던 편지지나, 다시 쓴 편지지는 둘다 같은 모양과 재질의 편지지였지만, 두장과 네장의 내용이 아주 많이 달랐던 것처럼, 나는 문득 그 두장의 편지지는 화선지 같다고 생각했어. 그 편지지의 적힌 마음은 화선지에 떨어뜨린 먹물 방울 같아서 다 얼룩지고 번졌어. 그러니까, 다 번진 그 마음은 내가 가질게. 너는 번지지 않은 내 마음만을 가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