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후 늦게까지, 집에서 그저 가만히 누워있었다. 새벽 늦게까지 못자고 있던 나는, 아침에도 몇번씩이나 자다깨다 했었고, 그리고 그 잠에 취한 상태가 오후까지 갔다. 그래. 차라리 계속 잠드는게 나았다. 깨고 나면, 이 모든게 꿈일지라도. 그리고 정말로 네가, 여기를 떠났을지라도.

결국엔 일어나서, 세수와 양치를 하고, 머리를 더 높이 질끈 묶었다. 언니가 틀어놓은 예능 프로를 옆에 누워 흘깃흘깃 보다가, 고개를 돌려 인형에 얼굴을 묻었다가, 핸드폰을 괜히 손에 쥐었다가 했다. 그렇게 내 시간이, 하루가, 주말이, 또 내 마지막 휴가날이, 그리고 네가 떠나는 날이 대책없이 가고 있었다.

헌데 밤늦게, 갑작스럽게 엄마가 집에 온다고 했다. 게다가 지금부터 한시간 안에 여기에 도착이라고 했다. 나와산지 3년이 되어가는동안 엄마가 집에온건 지금까지 단 세번이었다. 그런 엄마가 여길 다 온다는건, 버선발로 홍대 그 어귀까지 뛰어나가 반길만한 일이었지만, 어제는 집도 엉망인데다가, 내 몰골은 더 말이 아니었다. 집도, 나도 그 꼬락서니가 아주 가관이었다. 이러면 안된다. 나는 엄마에게 참 예쁘게도 보이고 싶은 딸이니까.

일단은 머리부터 감아야겠다 싶어서 묶고있던 머리를 풀렀더니, 머리에서 하루는 묵은 매캐한 담배 냄새가 맡아졌다. 엊저녁, 오라방의 생일파티랍시고 바에서 있었던 까닭일텐데, 그 덕에 속이 쉽게 메스꺼워졌다. 머리가 핑-돌더니, 어제 마지막에 스트레이트로 마셨던 술이 다시금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빠르게 씻고 나와, 집을 치웠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그리곤 다시 쇼파에 앉아, 저렇게 큰 곰 한마리가 더 늘은걸 보면 뭐라고 할까. 괜히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곰세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도 있지만, 변명은 준비되지 않았다.

비오는 밤, 아홉시 반이 조금 넘어서, 엄마가 커다란 보라색의 우산을 둘이서 사이좋게 나눠쓰고 나타났다. 엄마가 팔짱을 꼈던가. 손을 잡았던가. 암튼 그랬다. 엄마는 딸들에게 소리소문도 없이 가게를 접고, 목요일 밤부터 여행을 다녀왔다. 순천을 거쳐, 부산을, 통영을, 또 거제도를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신난 목소리로 전화가 오더니, 통영에서 케이블카를 탔다고 했다. "야~ 여기 사람 무지 많다. 한시간에 800명이나 올라와."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더니 다음 주말에 다같이 놀러가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13일부터 15일까지, 이미 어느 사찰에 있을 예정이었다. 엄마한테 나 다음주에 절에 가는데? 라고 말했지만, 저 아랫지방 통영에서부터 이 윗지방 서울까지 들려오는 엄마의 들뜬 목소리를 모른척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절은 조금 미뤄야 할 것만 같다. 몰래 가서 버려야 할 마음을 나는 대체 어디까지 킵해둘 수 있을까.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꼭 사랑에 빠진 소녀같은 얼굴을 했다. 그리고 차라리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는 그 소녀같은 얼굴이 너무도 낯설었지만, 근 일년반동안 본 얼굴 중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이라, 그저 나도 함께 웃었다. 엄마가 꼭 통영 꿀빵에다가, 팥앙금이 가득 들어있는 호두과자를 사다줘서 그러는건 아니다. 나는 우리 심여사가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 그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