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고도 절반의 시간을, 정말로 너무 많이 울어서, 이제 더는 울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안의 그 어떤 세계가 완전히 끝나도, 새로운 아침은 변함없이 밝아서, 나 역시도 아무렇지 않게 출근해 자리에 앉아야 했다. 교학과에 방문하는 학생들이며, 교수님들이며, 함께 일하는 조교 선생님이며, 근로 학생들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오가는 틈바구니에 끼어서, 구태여 네가 남긴 말들을 꺼내보고, 또 사무실에 앉아서 울 정신이 남아있고, 내안에 아직도 빼내야 할 눈물이 남은걸 보니, 아직도 내게는 무엇인가 남은 것만 같다.

대체, 얼마나 더 울어야, 손엣가시같은 네가 빠질까. 강제로 뽑으려다 내 속에서 부러진 가시가 대체 이 마음 어디에 박혀있는지, 나는 내 안에 네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너무도 따끔따끔하다. 부러진 너는, 내 속 어디에, 또 언제까지 박혀있는걸까. 나는 이제, 너무나도 무섭다. 이대로 내 속에, 나조차도 모르는 그 어딘가에 부러진 가시처럼 네가 박힌채로, 지금 이렇게 마음이 죄 긁혀 아픈 상처들이 너를 품속에 안은 채로 다 아물어 버릴까봐. 있잖아.. 평생 내안에는, 이렇게 부러진 네가 있을것만 같아. 너는 언제나, 내 손엣가시 같았던 사람.

이제는 제발 그 어떤 결정이라도 내려달라는 내 성화에, 화요일 새벽, 지구 반바퀴를 돌고 바다를 건너 날아온 이야기들, 먼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는 너를 좋아했고 좋아해. 라는 첫번째 줄에서 부터 눈물이 터졌다. 처음 마주하는 네 진심은, 그게 설령 달콤한 거짓말이라 해도, 지난 시간을 예쁘게 포장해버리려는 포장지라고 하더라도, 나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네 말을 전부 다 믿고 싶었다. 아니. 나는 언제나 너를 믿었다. 네가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고 있을 때에도, 나는 네 생에서 너를 가장 믿어주었던 사람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니까.

어제 아침에 가까스로 씻고 나와 거울 앞에 앉았더니, 눈도 얼굴도 마음도 모조리 다 퉁퉁 불어터진 개구리가 거울 속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제, 개굴개굴 울었다. 눈을 몇번이고 틀어 막았지만, 눈물이 자꾸 새서, 나는 아침부터 몇번씩 사무실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젖은 화장실에 주저 앉고, 벤치에 얼굴을 묻고 앉아서, 또 친구에게 안겨서, 어제는 무려 다섯명에게나 내가 개굴개굴 우는 걸 보이고야 말았다. 나는 그 사실이 못내 참담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정말 최악이라고. 남 앞에서 이렇게까지 울어서, 그리고 이제는 정말 내게 남은 것이 정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올해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글렀구나. 산타할아버지는 왜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주실까. 아니. 틀렸어. 그 전에 내가 착한 아이가 아니어서야.

일년반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가 알거라고 생각했던 너와, 나는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던 내가 거기 있었다. 네 말처럼,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들리지 않는 마음들까지. 그래. 내가 그 모든걸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마음을 말하지 않으면, 모를 수 밖에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관계도, 배 아파 낳은 부모와 자식간에도, 그 어떤 연인사이에도,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는 친구 사이에서도, 서로가 보내는 텔레파시만으로는 마음이 통하지 않아. 나는 초음파를 내는 돌고래가 아니야.

네가 날 네 삶에서 내치던 스물다섯, 그 마음이 너무 추웠던 12월처럼, 불과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게 살겠지. 그리고 나는, 단지 네가, 내 스물다섯 그리고 스물여섯까지 존재했기 때문에, 나는 너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도 못하고, 또 이 기억을 버리지도 내안에서 내치지도 못하면서, 또 이 기억으로 어떻게든 살겠지. 그래 작년에 이미 한번 겪었고, 또다시 한번 더 겪는 일이, 전처럼 죽을만큼은 아닐 것 같아. 죽을만큼 힘들어도, 그건 그냥 결국엔 죽을만큼 이겠지. 어쨌거나 나는 또, 이 삶이 살아질거야. 네가 내 삶에서 사라져, 모든 것이 다 물거품이 되어도.

허나, 나는 지금 이 말들을 얼마나 많이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까. 그래도 이 끝에서, 단 한가지 다행인 것은, 내 지난 시간들이, 네게 어떤 방식으로라도 사랑받았다는 것을 끝내 알았기 때문이야. 내가 너를 만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가 네 말처럼 정말로 무언가를 계속 잃게되서가 아니라, 내가 네게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다는 사실이 가장 내게 뼈아픈 진실이었으니까. 내가 네 삶에서 그저 먼지같은 사람은 아니라서, 그저 네 마음에 쌓여만 있던 사람은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해. 내 2년의 모든 것이 다 끝나는 마당에서라도, 처음으로, 좋아했고 좋아한단 말을 들어서, 기뻐. 그래. 알아 나 진짜 바보야. 그래도 내 스물다섯, 스물여섯이 그저 가엾지만은 않아서. 내가 이제 더 가여운 사람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또 어떻게 잠들어야 할지 조차 잘 모르겠어. 나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마음에 가까이 갈 수가 없어서, 네가 하늘을 날아 거기 도착한 뒤 부터는, 근 한달하고 보름을 침대가 아니라 쇼파에서 자고있다는 걸 네가 알기나 할까. 내가 이 집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유를 네가 알까. 내 작은 침대에는 벌써 한달 반째, 덩그러니 네 마음이 혼자 자고 있어. 네가 돌아올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돌려달라는 네 마음을, 네 마음이 밤마다 곁에 있어서 잘 잘거라고 말했던 이 마음을,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정말로 모르겠다.

우리가 다시 만날 때에, 나는 이미 알았어. 지금 우리의 풍경에는 자주 꽃이 피지만, 머지않아 이 꽃은 지고 떨어지고, 나는 네가 남긴 이 풍경속에서, 기년을 살거라는 사실까지도. 내 스물다섯 스물여섯의 풍경 속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던 게 사실이야. 그래. 그 풍경은 이제 끝났어. 이제 더는 그 위에 어떤 색도 덧칠하지 말자. 우리가 함께한 풍경은, 앞으로도 평생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못할 그림이 되겠지. 단지 이 그림은 내 개인 소장으로만 평생 남을거야. 그래도 함께, 내 삶의 어떤 풍경이 되어줘서, 그 어떤 풍경으로 남아줘서, 그 마음을, 온통 너로 칠할 수 있게 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웠어. 잘가. 그래. 이제 내 삶에서 없어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