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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12시가 넘어가자 손님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가게에는 단 한 테이블만이 남아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생은 졸렵다며 아까부터 엎드려 잠을 잤고, 나는 홀로 카운터에 앉아서, 수명을 다해가는 스탠드 아래에서 책을 펴고 앉아있었다. 사방이 어둡고, 그마저도 침침한 불빛 아래에서 글자가, 그것도 다른 나라의 글자가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거기에 내 머리 위에 달려있었던 난방기도 나를 흐트러트리는데 한 몫 했는데, 거기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 탓에, 몸 어딘가가 자꾸만 가려웠던 것이다.
손바닥 위에 핸드크림을 오백원치 짜서는 치덕치덕 몸에 여기저기 발랐지만, 손이 자꾸 내 말을 듣지 않고, 내 속 여기저기를 벅벅 긁었다. 살갗이 하얗게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벌겋게 생채기가 났다. 쉽게 속이 다 망가졌다. 그럼에도 나는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공부하겠다며 쥐었던 펜은 놓은지 오래였다. 그런식으로 점점 글자에서 멀어지자, 갑자기 타인의 목소리가 내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밀어내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마지막 손님들의 대화를 중간중간 엿듣고야 말았다. 이미 헤어진 사람들의 그 어떤 대화를. 같은 날, 서로 다르게 몸 속에 보관된 기억들을.
나는 어제 아주 잠깐, 입 밖으로 너를 꺼냈을 뿐이었다. 정말로 그게 다였다. 그러나 너와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저기 앉은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온 힘을 다해서 쑤셔박은 기억들이 견디지 못하고 바깥으로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꼭 쥔 손에서 땀이 나고, 갑자기 눈에서도 땀이 나고, 그러다 결국엔 기억에 양수가 터졌다.
허나 아직은 그러면 안됐다. 나는 가끔 네가 못견디게 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신히 넣어둔 내안의 너를 낳아서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만 도와달라는 말을 몇번 씩이나 모른척하는 너를 겪고도, 아직 내게는 미움의 손발톱이 다 자라지 못했다. 아직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애꿎게 타인에 의해 기억의 보호막이 터지며, 버릴 수 없는 기억의 가랑이 사이로 네가 흘러 나왔다. 또다시 내가, 미완의 상태로 미완의 너를 낳고 말았다. 우는 마음을 달래고 어르다가 잠이 들었지만, 잠든 직후부터 밤새도록 나는, 온통 너를 꿈꿨다. 밤새도록 내가, 내가 만들어낸 울음소리에 시달렸다.
앞으로 또, 열달이건 스무달일지 모르는 시간을, 견디고 견디고 나면, 언젠가는 자연히 때가 될 것이다 정말로 그때가 되면, 나는 너를 온전하게 내 몸 바깥으로 빼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언젠가, 너를 온전히 낳을 것이다. 그리고 버릴 것이다. 그래야만이 너를 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