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해가 뭉텅 짧아졌다. 요즘엔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도 밤이고, 퇴근하려고 회사를 나서도 밤이다. 점심시간에도 밖에 나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보낼 때면, 여기 이 세계에서 낮이 멸종해버린 건 아닐까 싶어져 갑자기 무서울 때가 있다. 세상에 이렇게 온통 밤뿐이다. 밤밤. 까먹을 수도 없는 쓸모없는 밤.

안팎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날마다 사람들은 모여 빛을 밝히는데, 진실이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자꾸 빛이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다. 사람들은 모두가 빛나는데, 밝혀지는 것이라고는 모두 새카맣고 어두운 것뿐이다. 밤이면 밤마다, TV 앞에 앉아서, 꾸역꾸역 밀려드는 진실을 구역질을 참아가며 보고 있다. 얼마나 더 어둡고 무서운 것들이 남아있을까. 사람은 생각보다 더 얼마나 어둡고 나쁠 수 있을지에 대해 매일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는 나역시도 사람이고, 그래서 날마다 더욱 나빠진다.

밤이 차고 넘쳐나는 요즘, 황진이처럼 동짓달 밤의 허리라도 베어두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나는 또 밤이면 밤마다 마음이 어둡다. 밤마다 이불 아래 넣어둔 울적한 마음이 구뷔구뷔 펼쳐지는 것만 같아.

요즘 들어 부쩍 시든 것만 같다. 물론 내가 식물도 아니고, 식물이 될 수도 없겠지만, 나도, 푸르고 생생했던 우리의 관계도, 부쩍 시들어버린 기분이 든다. 처음부터 꺾인 꽃다발 같은 관계들, 언제고 시들어버릴걸 모른 것은 아니지만, 그냥 시들지 않고 정지된 사진처럼 예쁘고 생생하기를 끝없이 바랐을 뿐. 영원할 수 없다면 이대로 곱게 마른 꽃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우리가 잘 마른 것인지, 그대로 시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삶에 변명이 많은 나는, 이게 전부 다 볕을 쬐지 못해서 그렇다며 이 모든 것을 사라진 낮에게 누명을 씌우고 싶은 기분이다. 세계는 온통 밤뿐이다. 내게서 마른 잎이 자꾸 생긴다. 마음이 벌레 먹은 듯 구멍이 송송 났다. 그 사이로 바람이 자꾸 내게 분다.

이렇게 지나고 나면,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해진다. 사실 나쁜 짓은 내가 다하고 다닌다. 마른 잎 같은 나, 부는 바람에 닳아서 곧 그 나무에서 떨어질 것 같은 내가 여기에 있다. 따뜻하고 싶은 것이 잘못이 될 수 있을까. 잠깐 볕을 쬐고 싶었던 마음이 죄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변명이 많은, 나는 징그럽게도, 부도덕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