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문득 이사한지 일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자 나와 살기 시작했을 때 부터 나는 늘 오월에 이사를 했었다. 전세계약이란 대부분 2년이었고, 나는 전세살이를 하면서 부터 어쩐지 내가 두해살이 식물이 된 것 같았다. 오월마다 원하든 원치않든 분갈이를 당했다. 나는 늘 어딘가로 옮겨져야만 했다. 나는 평생 뿌리 내릴 곳이 없는 기분으로 살았다.

대학생 시절, 어렸을 때부터 계속된 가난은 내게 여전히 따라 붙었다. 나는 내가 과한 욕심을 부려 대학을 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알바를 했지만 그것으로는 늘 모자랐다. 버스 환승제도가 없던 시절, 서울역에서 집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매일 홍대에서 서울역까지 걸어가던 날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발바닥이 아픈 기분이 든다.

스물둘, 나는 언니와 함께 집을 나와 살게됐다. 그 후로 홍대의 지하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홍대에서는 세 번의 이사를 했고, 세 번 다 지하였고, 세번 다 곰팡이로 고생했다. 차라리 곰팡이로만 고생했으면 다행일테지. 집 화장실이 역류하거나, 벽이 젖는건 너무 흔한 일이었다. 다리가 많은 돈벌레가 나와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나는 내게서 언제나 곰팡내가 나는 것 같아서 자주 내 냄새를 맡았다. 나는 내가 지하실 냄새가 나는 사람일까봐 두려웠던 적이 많았다.

언니가 결혼하고, 혼자살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욕심내서 대학원을 진학 했던 내게는 돈이 없었고, 때문에 혼자 살게됐음에도 더 나은 선택은 없었다. 나는 또 다시 지하로 이사했다. 그 다음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내가 지하에서 탈출하는데에는 무려 13년이 걸렸다. 지금 사는 이 집은, 내가 13년만에 지상으로 올라온 집이다. 그리고 이제 고작 1년이 지났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나무로 된 가구가 거의 없다. 누군가가 내게 철제가구를 좋아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집에 철제로 된 가구가 대부분인 것은, 내가 철제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단지 오래도록 지하에 살았기 때문이다. 싼 값에 산 가구들은 지하의 습기에 이기지 못하고 늘 곰팡이가 피었고, 담아 둔 물건들에 곰팡이가 옮겨지거나 그 냄새가 뱄다. 나는 그 곰팡이 냄새가 지긋지긋했고, 그 때문에 나무로 된 가구를 사지 못하게 됐다. 사실 그건 여전히 그렇다.

오래도록, 늘 지하에 담겨져있는 내게는 무슨 냄새가 날지 항상 무서웠던 것 같다. 내게는 콤콤한 곰팡이가 자주 피었다. 이미 마음에 병균처럼 자란 곰팡이는 아무리 없애도 내게 남아있을까. 나는 내 마음 보이지 않는 곳에 여전히 곰팡이가 잔뜩 슬어있다는 것을 안다. 음식에 곰팡이만 핀 부분을 떼어내서 먹으면 안되는 거라고 배웠다. 그건 이미 곰팡이가 전부를 점령한거라고. 그럼 내 마음에도 전부 곰팡이가 점령했을까. 나는 가끔 내 전부가 못쓰는 사람인 것만 같아 무섭다. 병균처럼 마음이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