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었다. 결국 새달은 헐어서 또다시 헌것이 되었다. 5월이 시작되자 새달이었던 4월이, 보란듯이 헌달이 되고 말았다. 내가 애써 지나온 달을 헌달이라고 말하고보니 순식간에 지난 모든 것이 너절해져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허나, 이미 4월의 마음이란, 너무도 너절하다.

3월의 마지막 무렵에, 나는 그 다다음달인 5월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허나 4월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내가 또 4월을 새로 헐어 꺼내 쓰기도 전에, 나는 누군가의 삶에서 갑자기 강제로 철거되고 말았다. 언제부터 내가 당신의 삶에서 '철거예정'이었을까. 도대체 내가 언제부터 가슴에 빨갛게 휘갈긴 글씨를 달고 있었는지, 나는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다. 어찌되었던 간에, 4월에 나는 단숨에 허물어졌다. 지나온 4월이, 모두 폐허다.

허나 나는 아직도, 내 허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아직도, 함께한 지난 시간들이 뱀이 곱게 벗어놓은 허물처럼 홀랑 마음에 남아서 나를 힘들게 한다. 폐허가 된 내 위로, 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4월의 내 허물만이, 흉처럼 곱게 남았다.

다달이 새달은 헐어서 헌것이 되는 것처럼, 나 또한 다달이 마음을 헐고 또 허물어뜨리고 마는 것 같다. 이제 나는 새달이 오는게 더는 달갑지 않다. 나는 이미 낡아서, 달마다 허물어지는 것에도 너무 힘이 든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마음이 헐값에 팔리지도 않는다. 이제 또 다시 5월이 여기에서 헐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또 허물어질 것이다. 허물이 커야 고름도 많다는데, 나는 어쩐지 고름만 많은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