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내내 징그럽게 추웠다. 우리 집은 내 방 하나만 빼고 모두 우풍이 심했다. 전기장판이 절절 끓던 내 방은 따뜻했지만 방문을 열면, 바깥세상이 콸콸 쏟아졌다. 사람이 사는 집조차 냉동 창고 같았던 주말, 나는 주말이니까 당연히 회사 같은 건 다 잊었다. 그래서 우리 회사도 내가 있는 우리 집 못지않게 추울 거라는 생각조차 전혀 못했다.

월요일 아침 8시, 사무실에 인사하며 들어오는데, 먼저 와 계시던 부장님이 저만치서 입을 뗐다. 나는 아직 가방도 내려놓지 못하고, 옷도 벗어놓지 못했을 때였다. 내가 3개월을 기르던 구피가, 주말 사이에 추워서 수컷 한 마리를 빼고 모두 죽었다는 얘기였다. 그게 오늘 아침, 내가 눈뜨고 일어나 처음으로 들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어항에는 미동 없는 구피가 총 여섯 마리. 어항에 손을 대니 정수기에서 나오는 냉수 같은 물의 차가운 온도가 느껴졌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정말로 잊었다. 구피가 열대어라는 사실을. 죽은 열대어 여섯 마리와, 느리게 움직이던 혼자 남은 구피 한 마리, 그리고 춥다며 두꺼운 패딩을 온몸에 둘러 감은 내가, 그 앞에 비석처럼 서서 아무것도 못했다.

지난주에 처음으로 낳았던 새끼 다섯 마리들. 잔멸치의 1/5도 안되던 그 작은 치어들, 샤프심으로 찍은 점 하나 보다 작았던 새끼들의 눈, 어항에서 새끼들을 분리시키던 내가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기뻤었는지. 안 그래도 작은 사료를 곱게 빻아 물에 넣어주던 나, 일하면서 자꾸 올려다보고 한참을 신기해하던 나, 하루가 다르게 물고기의 형체를 갖춰가는게 너무너무 신기했던 내가, 마치 마지막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월요일 아침부터 엉엉 울면서 모두 건져내고서, 예전부터 뭔가를 기르는 재능이라고는 없는 나를, 내가 또 다시 간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부터 기르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내 물고기들에는 처음부터 이름이 있었다. 이름이 없다고 했던 것은, 내가 정이 들까 무서워서 그랬다. 그래서 이름도 부르지 못했다. 그래서 이름 같은 건 붙여주는게 아니였는데..

지난주에 새끼를 낳았던, 그리고 죽은 암컷 구피의 이름은 밍이였다. 아주 당연스럽게도, 내 이름에서 따왔다. 그리고 밍이 죽었다. 아침부터 엉엉 울고, 우울하다는 내게, 손가락 한마디 보다 작은 물고기가 죽은 것이 뭐 그리 요란을 떨 일이냐고 했지만, 나는 손가락이 통째로 잘린 듯이 마음이 아팠다. 새끼를 낳고 며칠만에 죽은 밍과, 지난 주에 갓 태어나 처음으로 눈이 밝아졌을 새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잘게 바스러지는 기분이었다. 연말에 있던 일이 겹쳐지며, 며칠을 내리 우울에 시달렸다.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무섭다. 또한, 그리고, 그러나, 그대로 살아지는 것도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