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결산이 끝나고 나니, 어느새 봄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야근을 했고, 지겹도록 주말에 나와서 일을 했다. 이번 겨울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지났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가 하얗게 센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겨울, 몇 번이나 속수무책으로 내리던 폭설처럼, 내 머리 위에도 속수무책으로 눈이 내렸다. 이제는 이걸 새치라고 해야할지, 흰머리라고 명칭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은 것들, 고된 삶을 명징하는 것들, 어쨌거나 흰 머리카락을 뽑으면 머리숱이 줄겠네. 라는 걱정을 했더니, 어제는 꿈에서 머리가 뭉텅뭉텅 빠지는 꿈을 꿨다.

봄은 또 이렇게 말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태어나 계절을 깨닫게 되고서, 나는 오늘로 몇 번째 봄에 접어들었을까. 아침 출근 길, 지하철 출구에서 회사까지 고작 100미터 남짓한 거리, 빼빼 마른 나무들 사이에서 저 혼자 패딩을 입고 출근하던 겨울이 불과 어제일 처럼 느껴진다. 패딩을 입으면, 세상에 내가 조금 더 많이 존재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던, 그 겨울이 끝났다. 언젠가 나는 세상에, 부피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메마른 가지 뿐이던 세상에 매일매일 살이 붙어간다는 걸, 요 며칠 사이에, 갑자기 눈여겨보게 됐다. 새순이 돋고, 작은 잎사귀들이 달리더니, 오늘은 부쩍 두툼해졌다. 언제 살이 쪘나 싶게 살이 찌는 것 처럼 네게 달린 잎사귀들이 부쩍 많아졌다. 나무에도 살이 쪘다. 새로운 가지처럼, 네가 자라났다. 성큼성큼 봄이 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 깜빡할 사이, 마음에 봄이 뿌리를 내렸다. 봄이다. 그리고, 다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