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에너지가 없었다. 요즘 부쩍 유행하는 MBTI를 맹신하진 않지만, 태어나 늘 E로 살았다. 고등학교때부터 몇 번을 검사해도 I형 인간인 적은 없었다. 나는 원래 밖으로 다니는 걸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걸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몇 명의 사람들과 몇 번을 크게 돌아서게 되면서, 내 성향 역시도 반대로 돌아섰다. 나는 지난 몇년 간이나 필라테스가 배워보고 싶었지만, 강사님을 새로 알게 되는 것조차 싫어서 기어코 배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벼운 스몰토크조차 나누는 인연들도 허락하고 싶지 않은 상태, 그 상태가 된지도 족히 5년은 넘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있는건 또 징그럽게 싫어하는 천성은 변치 못해서, 그래서 자주 떠돌았고, 그러다 가끔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진저리 치듯 도망쳤다.

근데, 이번에 어쩐일인지 용기가 났다. 2월의 어느 날 문득,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모임에 나갔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 한다는게 버거워져 김 꿔다놓은 보릿자루 밍나처럼 있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말을 걸어주고 챙겨주는 사람들 덕에 조금의 용기가 생겼다. 나와는 다른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 속에 있으면 방전됐던 에너지가 충전될까. 문득 엊그제 낯선 사람들 틈에서 웃으며 종알대던 내가 낯설어서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나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사람, 네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자 내 이야기는 하지 않는 사람, 누군가를 챙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자 허나 나를 돌보지는 않는 사람, 그래서, 살기 위해서,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사람이다. 언젠가 회복에 몇년이 필요할 만큼의 에너지를 썼다. 다시 또 누군가를 삶에 깊이 들여놓는 일은 이제 더는 못하겠지만, 나는 다시, 나와 다른 당신의 에너지를 탐내며, 적당히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