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많은 날들이 지났다. 봄이 피었음을 미처 다 알기도 전에, 여름이 시작됐다. 나는 한번 계절을 타면 끝도 모르고 타는 사람인데, 몇 년 전부터는 계절의 변화를 남들보다 한발 늦게 깨닫는 것 같다. 그냥 잊고 살면 그렇다. 잊고, 또 버려지는 마음들이 서랍 속 출처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처럼 많아졌다.

올바른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미세먼지라는 말을 일기에 처음 쓰는 것 같다. 그만큼 오래도록 일기를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스마트폰을 갖게 된 이후로부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날씨를 찾아보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그 창에는 미세먼지 수치가 한 자리를 꿰찼다. 이거야 원 낙하산이 따로 없다. 쨌든, 미세먼지라는 말이 익숙해진 요즘, 나쁨속에 진짜로 나쁜 것은 누군인지 모르겠다.

6월의 여름을 말하고 나면, 마음이 유약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했다. 아무리 커다란 우산을 쓰고도 나는 어딘가 빗물에 꼭 젖는다. 몸이 젖지 않으면 마음이라도 젖어온다. 요즘들어 나는 부쩍 뭔가를 쓰고 싶은데, 일단은 우산을 쓰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질척하다.